시사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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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회 2022년06월27일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국가 재건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끊임없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획기적인 국방의 방안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1961년 미국의 학생군사교육단 제도를 모태로 도입한 것이 ROTC 제도의 시작이다. 국가 안보의 핵심인 역량 있는 엘리트 초급 장교를 안정적으로 배출하겠다는 취지였다. 창설 이후 지금까지 배출한 초급 장교만 해도 약 23만 명, 그동안 전방 부대 초급 장교의 약 70%를 ROTC가 맡아왔다. 장교로서 군복무 이후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정재계와 교육, 문화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ROTC 창설 61주년을 맞아 우리가 잊고 지냈던 ROTC의 역사와 기여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 DMZ 따라 달리는 390km, 호국보훈 순례길
 ROTC 창설 6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5월, 고성 통일 전망대에 ROTC 예비역들이 모여 들었다. 최전방 DMZ를 따라 고성부터 임진각까지 4일 동안 장장 390km를 자전거로 달리는 대장정을 위해서이다. 이들은 치열했던 한국전쟁의 격전지를 참배하며 ROTC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겨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젊은 시절의 피와 땀이 베인 최전방 현장에서 지금도 전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후배들과의 만남까지 이루어져 의미가 한층 깊었다. 고비가 올 때마다 선후배들은 함께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4일의 시간, 평균 나이 65.5세, ROTC 예비역들의 꺼지지 않은 저력을 보여 줄 수 있을까? 국방의 중요성과 선배 장병들의 피와 땀이 새겨진 그 길을 함께 달려가 본다. 아울러 ROTC 61년의 치열한 현장에서 겪은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본다.


▶  ROTC 23만 명, 국방과 경제발전의 최전선에 서다
 대학 입학조차 특별하게 여겨지던 6,70년대, 우수한 학업 성적과 엄격한 서류 심사, 체력 검사를 통과해야했던 ROTC의 경쟁률은 매우 높았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 장교로 임관한 ROTC는 국방의 일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군에서도 대학에서 배운 다양한 전문 지식을 활용하였다. 전역 후 ROTC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통했고, 기업 등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엘리트 인재로서 각광받았다. 취업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면접 시 혜택은 물론, 전역 시기를 맞춘 특별 채용 등 말 그대로 상종가를 달렸다. 그만큼 사회에서 이들의 역량과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도 맹활약했다. 중공업과 수출산업, 중동건설 현장 등 1961년 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ROTC 출신 인재들이 국가의 경제 성장과 함께 해온 것이다. 
 
▶ 세대를 넘어 변모하는 ROTC의 역사와 도전
 2012년 여군 장교를 배출하기 위해 숙명여자대학교에 최초로 여군 ROTC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들의 교육과 훈련도 남성 ROTC 과정과 동일하다. 대학 2년 동안 640시간의 군사 교육과 훈련, 28개월의 의무복무기간을 거쳐야 한다. 4학년인 정희진 씨는 ROTC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ROTC의 길을 선택하였다. 대를 이은 ROTC 가족도 많다. 임종무(80세) 씨 가족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손자로 3대를 이어 ROTC 장교를 배출했다. 외동딸을 자랑스러운 ROTC 장교로 키운 남신우(55세) 씨 부녀. 대학에 진학한 딸이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깊었지만 딸은 기꺼이 아버지를 이어 ROTC의 길을 선택하였다. 청년들이 ROTC에 대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부심과 기대에 호응한 것이다.
 MBC 다큐프라임 호국보훈의달 특집 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환갑을 넘긴 ROTC의 역사와 활약을 담아냈다. 소설가 김홍신 씨, 방송인 이상룡 씨 등 ROTC 출신 인사들이 출연해 생생한 체험담과 재미있는 비화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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