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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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회 2023년09월21일
1. [맛있는 동네로] 서울 장충동이 족발로 유명해진 이유는?

서울특별시 장충동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쫄깃함과 야들야들함이 공존하는 족발! 오늘 찾아간 맛있는 동네는 족발로 유명한 장충동이다. 이곳에서 족발이 유명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장충동 족발 골목 건너편에 자리 잡은 장충체육관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6.25 전쟁 이후 장충동에 정착한 실향민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찾은 곳은 장충동 족발 골목에서 무려 50여 년 동안 장사한 가게. 이북 실향민이었던 어머니 뒤를 이어 벌써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이곳에서는 어머니가 고향에서 먹던 돼지족조림을 떠올려 만든 게 지금의 족발이라는데. 실향민들로 시작한 족발집은 점점 늘어나 지금의 족발 골목이 되었고, 특히 장충체육관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주변 족발집들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양돈장이 들어서면서 수출 후 남겨진 돼지 족은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었고, 그렇게 족발은 실향민들의 고향 음식에서 점차 전 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족발과 함께먹는 새우젓과 막국수에 담긴 이야기 까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장충동 족발 골목 이야기를 <맛있는 동네로>에서 만나본다.

2. [대한민국 보물정원] 친구 같은 엄마와 아들이 만든 과수원 정원

오늘 떠난 곳은 경상북도 경주의 한 시골 마을. 이곳에 매주 주말마다 2,000명의 손님이 오가는 정원이 있다는데?! 두 동의 주차장 만석은 물론 웨이팅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곳은 6,600㎡ (총 2,000평) 부지의 야생화 정원 카페.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400여 종의 꽃들과 나무가 손님들을 반긴다는데. 정원 곳곳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좌석 세팅은 덤이라고. 넓은 부지의 정원을 꾸민 정원주의 정체는 바로 박성희&손인서 모자. 5년 전, 도시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던 엄마가 은퇴한 후, 100년 된 과수원을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아들에게 긴급 SOS를 청했다. 서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아들이 엄마를 위해 기꺼이 시골행을 택했단다. 그러나 낭만적일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의 시골 전원생활에 뜻하지 않은 고충이 생겼다는데? 이제는 서로 눈만 봐도 척척, 누구보다 정원을 가족처럼 아낀다는 두 사람. 정원에서 나는 유실수와 솔잎을 활용해 남다른 디저트들도 개발했단다.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인기 폭발! 정원의 화려함에 한번, 디저트의 맛에 두 번 반한다는 정원 카페. 사이 좋은 모자가 만든 정원 이야기는 <대한민국 보물정원>에서 만나보자.

3. [촌집 전성시대] 정(情)으로 지은 촌집

충북 영동군, 산 중턱에 대문도, 담장도 없이 자연을 병풍 삼아 자리한 황토집이 있다. 이 집의 주인장인 송남수(71) 씨는 집 앞에 자리한 저수지 풍경에 반해 20년 전 이곳으로 귀촌했다. 처음엔 조립식 주택을 지었는데, 부실 공사로 인해 집이 하자투성이였단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폐암 4기 판정을 받곤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이후 홀로 남은 그는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하자투성이 집을 버리고, 새로운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돕겠다며 두 손을 걷어붙였고, 덕분에 약 1년에 거쳐 황토집을 지었다. 최근에 태풍과 장마로 인해 지붕이 썩고, 황토벽이 흘러내리고 있다는데, 하지만 걱정은 금물! 처음 집을 지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황토집을 보수할 때면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함께 손을 보태준단다.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정이 가득한 황토집으로 떠나보자.

4. [수상한 가족] 무심한 남편과 사는 법

경북 영양군에 사는 인계선(63), 김기칠(67) 부부. 37년 전, 태백시에 살던 아내가 영양군으로 시집온다고 했을 때, 아내 주변에선 이 결혼을 말렸단다. 큰 도시에서 힘든 일 한번 해본 적 없던 아내가 언감생심, 시골로 시집가면 얼마 못 견디고 뛰쳐나올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아내는 남편 하나만 보고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처음 하는 농사일은 어려웠고, 마을이 남편 성 씨의 집성촌이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힘이 돼주어야 할 남편은 외롭고 힘든 아내의 속을 알아주긴커녕, 사내랍시고 밖에서 친구들 만나느라 바빠 무심하기 짝이 없었단다. 그런데,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요즘은 계속 아내 곁을 맴돈다. 장성한 자식 내보내고,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자, 남는 건 아내뿐이라고 느낀 걸까. 전통 장을 만드는 아내 옆에서 보조 역할을 자처하는 건 기본이요, 아내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아내를 위해 밥도 차려준단다. 여전히 무심하고, 낯간지러운 말 한마디 못 하는 남편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아닌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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