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선으로 여행가자] 연간 5만 명이 다녀간 호텔의 정체는?
정선군 고한읍 18리에는 특별한 호텔이 있다. 10년 전만 해도 쓰레기가 나뒹굴던 폐광촌은 주민들의 노력 끝에 2018년, 국내 최초 마을호텔로 재탄생했다. 마을에는 숙박할 수 있는 객실이 있고 골목에 있는 모든 상점이 호텔 부대시설이다. 투숙객들은 마을 내 식당, 이발소, 세탁소, 카페 등 총 15곳에서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버려진 폐광촌에서 국내 최초 마을호텔이 되어 작년에는 연간 5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20년간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이발소에서 정선 폐광촌 마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마을호텔 바로 옆에 있는 구공탄시장은 해발 700미터 고산지대에 있는 전통시장이다. 석탄을 캐던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광부 모형들이 매달려 있고 천장은 옛 갱도를 본따 만들었다. 구공탄 시장의 명물은 오징어먹물로 석탄 색을 내서 만든 석탄 빵! 그리고 광부들의 주린 배를 달래줬던 고기 연탄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돼지의 특수부위를 골라 만든 꼬들살을 광부 출신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연탄구이 맛집을 비롯해 폐광촌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2. [촌집 전성시대] 200년 된 서당을 고쳐 만든 촌집
전남 강진군, 월출산 자락에 200년 된 서당을 촌집으로 고쳐 만든 주인장이 있다. 낡고 허물어져 있던 서당을 나무 골조만 빼고 전부 고쳤다는 김하나(65)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과거 화예 작가였던 하나 씨는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던 중, 우연히 전남 강진의 풍광에 반해 이곳에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에 마을 어르신께 이곳에 빈집이 없냐며 농담 삼아 말을 꺼냈다가, 운명처럼 200년 된 서당을 소개받아 고쳐 살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옛 한옥의 멋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흙으로 만든 기와를 구해 지붕을 보수했고, 그 아래 외벽엔 남은 기와 조각을 하나, 하나 붙였단다. 이후 홀로 촌집에서 생활하던 중, 목공예 작가였던 이지우(65) 씨가 한옥 인테리어를 참고하고 싶다며 촌집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함께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부부의 인연까지 맺게 됐다. 사랑꾼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 목공예 작업실로 향해 원하는 걸 뚝딱 만들어 준다는데, 덕분에 부부의 촌집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작품들이 가득하단다. 잉꼬부부가 사는 사랑 넘치는 촌집을 찾아가 보자.
3. [수상한 가족] 사과밭 아들내미로 산다는 건
사과의 고장이라 불리는 경북 청송군. 김현덕(35) 씨는 청송에서 6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아버지 김경남(67) 씨, 어머니 황옥화(65) 씨도 함께다. 이 가족의 사과 농장은 늘 아옹다옹한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부모님과 그에 맞서는 아들 때문이다. 신속보다는 정확을 추구하는 아들의 모습에 성격 급한 부모님은 ‘속 터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사실, 부모님의 ‘빨리빨리’엔 깊은 속뜻이 담겼다. 원래 부모님은 아들이 공무원이 되길 바랐단다. 이에 아들은 등 떠밀리듯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20대 전부를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늘 좌절만 안겼다. 아들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친구들은 취업에, 결혼에, 아이까지 낳았다. 준비해 온 시간이 아깝다고 과거에 얽매일 순 없는 노릇! 아들은 공무원 준비를 접고, 할머니의 사과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말도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아들을 보니, 부모님은 후회가 밀려온다. 당신들이 ‘공무원 아들’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조금 더 일찍 ‘사과 농부’로 자리 잡았을 텐데 말이다. 자꾸 아들을 다그치는 진짜 이유는 부모가 도와줄 수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알고 보니, 농사가 체질인 아들과 든든한 지원군 부모님이 함께하는 사과밭으로 가본다.
4. [오늘 저녁 주치의] 두 아이의 엄마를 괴롭히는 통증을 고쳐주세요
<오늘 저녁 주치의>에서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밤낮없이 일해온 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된다. 이혼 후, 5년 전부터 홀로 두 아이를 키워왔다는 현주 씨,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밤낮으로 탁송 업까지 하게 됐단다. 종일 운전대를 잡다 보니 허리와 목 통증이 심해졌다는데,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진통제를 먹으며 버텨왔다고 한다. 병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비용부담은 물론, 어린 두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수술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단다. 이제는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어렵다는 현주 씨. 밤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찾아와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들 수 있단다. 한창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과 놀아줄 수도 없어 마음이 아프다는데, 나이에 비해 급속도로 나빠진 몸 상태에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는데